
“《아메리칸 고딕》은 아마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찬사를 받은 작품일 것이다.”
— 바버라 해스켈, 휘트니 미술관 큐레이터
그랜트 우드는 미국 아이오와에서 태어나 중서부의 사람과 풍경을 주로 그린 화가야.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 1930년에 완성한 《아메리칸 고딕》이지.
그림을 처음 보더라도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질 거야.
영화와 광고, 정치 풍자, TV 프로그램에서 워낙 많이 패러디됐기 때문이야.
쇠스랑을 든 남자와 그 옆에 선 여성은 웃지도 않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그림은 아닌데, 두 사람의 딱딱한 표정만 보고 있어도 묘하게 재미있고 자꾸 눈길이 가지.
그렇다면 이 무뚝뚝한 두 사람은 누구고, 왜 미국에서 이렇게 유명한 그림이 됐을까?

1. 아메리칸 고딕
◆ 제목에 들어가는 ‘고딕’은 그림 속 사람들의 분위기가 아니라 뒤에 있는 집에서 나온 말이야.
☞ 1930년 그랜트 우드는 아이오와주 엘던에서 작은 흰색 목조주택을 발견했어.
평범한 집이었지만 2층 창문만 중세 고딕 성당처럼 위쪽이 뾰족하게 솟아 있었지.
이런 건축을 카펜터 고딕이라고 불러.
나무로 지은 미국식 주택에 고딕 건축의 뾰족한 아치 같은 요소를 넣은 양식이야.
◆ 그림에는 이 집을 배경으로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서 있어.
☞ 남자는 작업복 위에 재킷을 걸치고 오른손에는 세 갈래 쇠스랑을 들었어.
여성은 오래된 무늬의 앞치마와 브로치를 하고 옆을 바라보고 있지.
재미있는 건 그림 곳곳에서 비슷한 선이 반복된다는 거야.
쇠스랑의 세로선은 남자의 작업복과 집 외벽으로 이어지고, 여성의 옷 무늬도 창문의 커튼과 비슷하게 맞춰져 있어.
◆ 두 사람의 자세도 오래된 사진처럼 유난히 딱딱해.
☞ 우드는 유럽에서 보았던 북유럽 르네상스 회화와 자신의 가족사진 속 옛 초상사진에서도 영향을 받았어.
그래서 웃음기 없는 얼굴과 정면을 향한 자세가 오래된 가족사진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 《아메리칸 고딕》은 평범한 미국 시골집과 그 앞에 선 두 사람을 이용해, 오래되고 보수적인 미국 농촌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그림이야.

2. 사실은 가짜 부부
◆ 이 그림을 보면 자연스럽게 나이 든 농부 부부라고 생각하게 돼.
☞ 실제로 작품이 처음 신문에 실렸을 때도 두 사람을 ‘아이오와의 농부와 그의 아내’처럼 소개한 경우가 있었어.
나이 차이가 큰 남녀가 한집 앞에 나란히 서 있으니 그렇게 받아들이기 쉬웠던 거지.
◆ 그런데 우드는 훗날 그림 속 두 사람을 농부와 그의 딸이라고 설명했어.
☞ 그러면 실제로도 부녀지간이었을 것 같지만 여기서 한 번 더 반전이 있어.
두 사람은 현실에서는 아무런 가족관계가 없었어.
남자의 모델은 우드의 치과의사였던 바이런 매키비였고, 여성은 우드의 친동생 낸 우드 그레이엄이야.
그림을 그릴 당시 낸은 약 30세, 매키비는 60대였지.
◆ 두 사람은 농부도 아니었고, 그림 속 집에서 살았던 적도 없어.
☞ 우드는 자신이 원하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따로 골라 모델로 세웠어.
결국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실제 가족의 초상화가 아니라 화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농촌 가족인 셈이야.
특히 낸은 자신이 나이 많은 남자의 아내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어.
부부인지 부녀인지에 대한 논쟁은 작품이 공개된 직후부터 계속 따라다녔지.
▲ 농부 부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실제로는 화가의 여동생과 치과의사였고, 그림 속에서만 하나의 가족이 된 사람들이야.

3. 시골 사람들을 비하했다고?
◆ 《아메리칸 고딕》이 공개되자 아이오와에서는 생각보다 거센 반발이 나왔어.
☞ 굳은 얼굴과 촌스러운 옷차림, 세 갈래 쇠스랑을 본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을 낡고 고집 센 시골 사람으로 조롱했다고 받아들였어.
특히 아이오와 농부의 아내들이 신문과 우드에게 항의하기 시작했지.
아이오와주 워시타에 살던 이네즈 켁은 실제 농촌 부부들은 그림 속 사람들처럼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며 항의했어.
또 다른 여성은 “우리가 아직도 세 갈래 쇠스랑을 들고 사는 수준으로 보이느냐”는 취지로 불만을 터뜨렸지.
◆ 화가에게 직접 화를 쏟아낸 사람도 있었어.
☞ 우드는 훗날 한 농부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 자기 머리를 깨버리겠다고 위협했다고 회상했어.
그만큼 일부 아이오와 주민들은 이 그림을 자신들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던 거야.
◆ 우드는 자신이 아이오와 사람들을 조롱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어.
☞ 그는 프랑스에 다녀온 뒤 오히려 고향 아이오와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취지로 말했고, 그림 속 인물들도 기본적으로는 “선하고 단단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지.
다만 그들의 결점까지 예쁘게 감출 생각은 없었다고 했어.
문제는 다른 평론가들이 이 작품에서 강한 풍자를 읽었다는 거야.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우드의 작품을 두고 “파괴적인 풍자”라고 평가할 정도였어.
◆ 결국 이 논란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어.
☞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오와 주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았지만, 작품을 농촌에 대한 존중으로 볼지 풍자로 볼지는 지금도 해석이 갈려.
우드 자신도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설명을 남겨서 오히려 논쟁은 더 오래 살아남았지.
▲ 사람을 웃기려던 풍자인지, 고향 사람들에게 보내는 존경인지 명확하게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 오히려 《아메리칸 고딕》의 재미가 됐어.

4. 수많은 패러디를 낳다
◆ 《아메리칸 고딕》은 1930년 시카고 미술관의 공모전에 출품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어.
☞ 작품은 동메달과 300달러의 상금을 받았고, 전시 직후 여러 신문에 그림이 실리기 시작했어.
이전까지 아이오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랜트 우드도 단숨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지.
◆ 이후 남자의 쇠스랑과 두 사람의 뻣뻣한 자세 자체가 하나의 공식처럼 남았어.
☞ 등장인물만 정치인이나 연예인, 영화 캐릭터로 바꾸면 누구나 원작을 알아볼 수 있었지.
광고와 신문 만평, 영화, TV 프로그램에서 끊임없이 패러디가 만들어졌어.
시카고 미술관도 《아메리칸 고딕》을 소장품 가운데 가장 많이 패러디된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단순한 두 사람의 자세가 하나의 문화적인 기호가 되어버린 거야.
◆ 1942년에는 사진가 고든 파크스가 같은 제목의 사진을 만들었어.
☞ 흑인 청소노동자 엘라 왓슨을 성조기 앞에 세우고 쇠스랑 대신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게 했지.
원작의 구도를 이용해 미국 사회의 인종과 노동 문제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보여준 작품이야.
이후에도 《아메리칸 고딕》의 두 사람은 시대마다 새로운 얼굴로 계속 바뀌었어.
휘트니 미술관의 바버라 해스켈은 이 작품을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평가했지.
▲ 처음에는 아이오와의 작은 집과 두 사람을 그린 그림이었지만, 지금은 얼굴만 바꿔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가 됐어.
그들은 왜 아직도 무표정할까?
《아메리칸 고딕》에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도 없고 극적인 장면도 없어.
그저 남자 한 명이 쇠스랑을 들고, 한 여성이 옆에 서 있을 뿐이야.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이야기를 집어넣을 수 있어.
누군가는 성실한 농촌 사람을 보고, 누군가는 고집스러운 보수성을 보고, 또 누군가는 그 모습 자체에서 웃음을 찾았지.
실제 모델조차 부부가 아니었고, 그 집의 주인도 아니었어.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가짜 가족에게 시대마다 새로운 의미를 붙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패러디가 태어났어.
어쩌면 이 그림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도 그 무표정한 얼굴 때문인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이 오히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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