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그리트의 걸작이자 초현실주의의 핵심 작품, 현대미술의 아이콘이다.”
—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르네 마그리트는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야.
익숙한 물건을 낯선 상황에 놓거나 그림과 글자를 함께 사용하면서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습관을 건드리는 작품을 많이 남겼지.
1929년에 그린 <이미지의 배반>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어.
그림에는 파이프 하나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짧은 프랑스어 문장이 적혀 있어.
“Ceci n’est pas une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누가 봐도 파이프인데 무슨 개소리 대체 무슨 말일까?

1. 이미지의 배반
① 누가 봐도 파이프가 그려져 있잖아.
☞ 특별히 이상하게 생긴 파이프도 아니야.
광고에 등장할 법한 평범하고 사실적인 파이프 하나가 화면 한가운데 놓여 있지.
그런데 그 밑에는 정반대의 문장이 적혀 있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②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마그리트의 말은 틀리지 않았어.
☞ 그림 속 파이프에는 담배를 넣을 수도 없고 직접 손으로 집을 수도 없어.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그린 이미지이기 때문이야.
마그리트 역시 사람들이 이 작품을 두고 따지자, 그림 속 파이프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설명했어.
만약 자신이 “이것은 파이프다”라고 적었다면 오히려 거짓말이 됐을 거라는 거지.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야.
그런데 그 당연한 말을 우린 왜 이상하다고 여길까?

2. 마그리트가 말하고 싶었던 것
① 마그리트가 관심을 가졌던 건 실제 사물과 이미지의 차이만이 아니었어.
☞ 그는 사물과 그것을 그린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부르는 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계속 파고들었어.
<이미지의 배반>을 그린 1929년에는 아예 ‘말과 이미지’라는 글까지 발표했지.
그 글에서 마그리트는 하나의 사물에 반드시 하나의 이름만 붙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미지와 이름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단하게 묶여 있지 않다고 봤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역시 이 작품을 말과 이미지, 실제 사물 사이의 관계를 흔드는 작품으로 설명하고 있어.
②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연결하는 것들을 일부러 떼어놓은 거야.
☞ 실제 파이프가 있고,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 있고, ‘파이프’라는 말이 있어.
평소에는 셋을 별 생각 없이 하나처럼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모두 다른 것이지.
마그리트는 바로 그 차이를 눈앞에 꺼내놓았어.
그래서 <이미지의 배반>의 파이프는 단순한 말장난이라기보다 우리가 사물과 그림, 말을 어떻게 연결해서 받아들이는지를 묻는 장치였던 거야.

3. 내 맘대로 해석
여기까지가 마그리트가 이 작품에서 다룬 이야기야.
그런데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어.
대부분의 그림은 그것이 결국 캔버스에 그린 그림일 뿐이라는 사실을 관객이 잠시 잊곤 하잖아.
사과를 그려놓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과”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그려놓으면 실제 사람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바라보지.
화가 역시 그렇게 보이도록 그리는 게 보통이야.
원래 저기엔 보통 화가들이라면 “이것은 파이프 입니다” 라고 적어야 정상이지.
그런데 마그리트는 정반대야.
파이프를 아주 그럴듯하게 그려놓고 바로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었어.
덕분에 파이프를 보고 있던 관객은 뜬금없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그림이라는 사실을 다시 의식하게 돼.
생각해보면 화가가 굳이 할 만한 말은 아니야.
자기가 만들어놓은 그림에 빠져들려는 사람을 오히려 현실로 끄집어내는 말이니까.
그런데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그림이 오래 남은 게 아닐까 싶어.
평소에는 그림을 보면서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를 봤다면, 이 작품 앞에서는 잠깐 멈춰서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까지 생각하게 되잖아.
파이프 하나를 그렸을 뿐인데, 결국 시선은 파이프가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에게까지 돌아오게 된 거지.
뭐 어차피 해석은 보는 사람들 마음이니까.
(르네 마그리트 니가 뭘 알아! 나도 이제 그림을 보면서 맘대로 해석하는 능력이 생김)
역시 예술은 말빨이 중요한 것 같아.
그냥 파이프 그림이면 별 감흥이 없겠지만, 글 하나 적는 걸로 엄청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어.
실제로도 평론가들 사이에서 그림 자체의 퀄리티는 그리 높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대.
▲ 결론, 우리들도 말빨을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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