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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5~6권, 디오메데스의 무훈과 헥토르의 가족 | 5분안에 책 정복하기

박사강 2026. 8. 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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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5~6권

  • 저자: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전해짐
  • 옮긴이: 천병희
  • 성립 시기: 기원전 8세기 무렵
  • 분야: 고대 그리스 문학 / 영웅 서사시 / 신화
  • 구성: 총 24권
  • 이번 이야기: 제5권~제6권 디오메데스의 무훈과 헥토르의 가족

 

소개글

 

지난 2~4권에서는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결투로 전쟁이 끝날 기회가 찾아왔어.

메넬라오스가 사실상 승리했지만 아프로디테가 파리스를 구했고, 결국 아테나가 판다로스를 부추겨 휴전까지 깨버렸지.

그렇게 다시 시작된 전쟁에서 제5권의 주인공은 의외의 인물이야.

 

디오메데스.

 

아킬레우스가 전투에서 빠진 사이 아테나의 도움을 받은 디오메데스가 그리스군 최고의 전사처럼 날뛰기 시작해.

인간인 판다로스를 죽이고 아이네이아스를 쓰러뜨리는 데서 끝나는 것도 아니야.

 

아프로디테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중에는 전쟁의 신 아레스까지 찔러버려.

 

하지만 여기서 디오메데스가 갑자기 신보다 강해졌다고 생각하면 안 돼.

아프로디테를 공격한 건 아테나가 특별히 허락했기 때문이고, 아레스를 공격할 때도 아테나가 직접 전차에 올라 창을 인도해줘.

그리고 디오메데스가 선을 넘으려 하자 아폴론은 인간과 신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줘.

 

반대로 제6권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조금 전까지 신을 찌르던 디오메데스가 적군과 싸우려다 조상들의 인연을 알고 무기를 내려놓고,

트로이 최고의 전사 헥토르는 잠시 전쟁터를 떠나 아내와 어린 아들을 만나.

 

그리고 여기서 《일리아스》를 대표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인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이별이 나와.

제5권이 영웅의 무훈을 보여준다면, 제6권은 그 영웅들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야.

 


디오메데스

1. 아킬레우스가 빠진 전장에서 디오메데스가 날뛰기 시작한다

 

 

제5권은 처음부터 디오메데스를 중심에 세워.

아테나는 디오메데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고 그의 투구와 방패에서는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묘사돼.

 

그리고 디오메데스를 전사들이 가장 빽빽하게 모여 있는 전장 한가운데로 보내버리지.

그 순간부터 디오메데스의 무훈이 시작돼.

 

트로이군 전사들을 연달아 죽이고 전차와 말을 빼앗으며 전장을 휘젓는데, 제5권 자체가 사실상 ‘디오메데스의 무훈’이라 불릴 정도로 이 한 사람의 활약에 집중되어 있어.

 

(디오메데스: 티데우스의 아들. 아르고스 세력의 주요 장수로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으며, 특히 아테나의 총애를 받는 그리스 영웅.)

 


능력이 생기는 디오메데

2. 화살을 맞은 디오메데스에게 아테나가 특별한 능력을 준다

 

그런 디오메데스를 트로이 측의 명궁 판다로스가 노려.

지난 4권에서 메넬라오스에게 화살을 쏴 휴전을 깨뜨렸던 바로 그 인물이야.

판다로스의 화살은 이번에는 디오메데스의 어깨에 제대로 박혀.

 

동료 스테넬로스가 화살을 뽑아내자 피가 솟구치고, 디오메데스는 곧바로 아테나에게 기도해.

그러자 아테나는 다시 디오메데스에게 힘을 주면서 특별한 능력 하나를 더 줘.

인간과 신을 구별해서 볼 수 있게 해준 거야.

 

대신 조건이 있어.

전장에 어떤 신이 나타나더라도 함부로 싸우지 말 것.

다만 한 명만 예외야.

 

아프로디테가 싸움터에 나타난다면 공격해도 좋다고 허락해.

 

이 조건이 중요해.

앞으로 벌어지는 일은 디오메데스가 마음대로 신들에게 싸움을 걸어서 벌어지는 게 아니니까.

 

(스테넬로스: 디오메데스와 함께 싸우는 그리스 전사. 전투에서 그의 전차를 몰고 곁을 지키는 가까운 동료.)

 


아이네이아스

3. 판다로스를 죽이고 아이네이아스까지 쓰러뜨린다

 

판다로스는 이번에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디오메데스를 상대하러 나와.

두 사람이 전차를 타고 접근하자 스테넬로스는 잠시 물러나자고 하지만 디오메데스는 거절해.

 

판다로스가 먼저 창을 던지지만 결정타를 주지 못하고,

디오메데스가 던진 창에 판다로스가 죽어.

 

그러자 아이네이아스가 판다로스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데,

디오메데스는 이번에는 거대한 돌을 집어 들어 아이네이아스의 엉덩이 관절 부근을 강타해 쓰러뜨려버려.

 

작품에서는 그 돌을 당시의 인간 두 명도 들기 힘든 크기라고 묘사해.

그대로 두었다면 아이네이아스도 죽을 상황이었어.

 

(아이네이아스: 인간 안키세스와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트로이의 주요 영웅.)

 


찔려서 도망가는 아프로디테

4. 아들을 구하러 온 아프로디테까지 찔러버린다

 

아이네이아스가 쓰러지자 그의 어머니 아프로디테가 직접 전장으로 내려와.

아들을 품에 안고 옷자락으로 감싸 무기들을 막으며 전장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지.

 

그런데 디오메데스에게는 아테나가 했던 말이 있었어.

아프로디테만큼은 공격해도 된다.

디오메데스는 그대로 추격해서 창을 찔러.

 

창끝이 아프로디테의 손바닥 위쪽 손목 부근을 뚫고, 상처에서는 인간의 피가 아니라 신들의 몸에 흐르는 이코르가 흘러나와.

고통을 견디지 못한 아프로디테가 아이네이아스를 놓치자 아폴론이 대신 그를 받아서 구해.

그런데 디오메데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아.

 

아폴론이 아이네이아스를 보호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달려들어.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 모두 아폴론에게 막혀.

그리고 네 번째로 달려들었을 때 아폴론이 마침내 경고해.

 

핵심은 간단해.

불사의 신들과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거야.

이번에는 디오메데스도 물러나.

 

이 장면이 있기 때문에 제5권을 단순히 ‘인간이 신까지 때려잡는 이야기’로 보면 안 돼.

디오메데스에게도 분명한 한계가 있고, 아폴론 앞에서는 그 경계를 인정해야 했어.

 

아폴론은 아이네이아스를 트로이 성채의 신전으로 옮기고 레토와 아르테미스가 그를 치료해.

그리고 아폴론은 아이네이아스와 똑같이 생긴 가짜 모습을 전장에 만들어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이 그 가짜를 놓고 싸우게 해.

 


※ 잠깐, 신들도 인간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다

상처 입은 아프로디테가 올림포스로 돌아가자 어머니 디오네가 딸을 위로하면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줘.

너만 인간한테 당한 게 아니라는 거야.

 

전쟁의 신 아레스는 한때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형제에게 붙잡혀 청동 항아리 안에서 13개월이나 갇혀 있었고,

헤라도 헤라클레스의 화살에 맞았으며,

저승의 신 하데스 역시 헤라클레스에게 화살을 맞은 적이 있다고 해.

 

신들이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강하기는 하지만, 《일리아스》의 신들이 절대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 존재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재미있는 장면이야.

 


5. 이번에는 전쟁의 신 아레스까지 찌른다

 

아폴론은 디오메데스를 직접 막은 뒤 아레스를 불러 트로이군을 돕게 해.

전쟁의 신이 직접 트로이군 편에 서자 상황이 달라져.

디오메데스조차 아레스가 전장에 있는 걸 보고 그리스군에게 물러나라고 할 정도야.

 

그러자 이번에는 헤라와 아테나가 움직여.

제우스의 허락을 받은 두 여신이 전장으로 내려오고,

아테나는 디오메데스의 전차에서 스테넬로스를 내려보낸 뒤 직접 그 자리에 올라 고삐를 잡아.

심지어 아레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하데스의 투구까지 써.

 

아레스가 먼저 디오메데스에게 창을 던지지만 아테나가 창을 밀어내고,

디오메데스가 반격하자 이번에는 아테나가 그의 창을 아레스에게 정확히 꽂아 넣어.

 

그러자 전쟁의 신 아레스가 비명을 질러.

그 소리가 9천 명이나 1만 명의 전사들이 동시에 함성을 지르는 것처럼 울려 퍼져.

아레스는 그대로 올림포스로 올라가 제우스에게 아테나와 디오메데스를 일러바쳐.

 

그런데 제우스는 오히려 아레스를 꾸짖어.

싸움과 전쟁만 좋아하는 아레스가 올림포스 신들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미운 존재라고 할 정도야.

전쟁광 주제에 고자질이다 하다니 혼날만 하지.

그래도 자기 아들이긴 하니까 결국 치료는 해줘.

 

전쟁의 신이 전쟁터에서 인간에게 찔리고 아버지한테 달려갔다가 혼까지 나는 장면.

제5권이 유난히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야.

 


6. 죽이려고 만났는데 조상들이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6권이 시작되면 신들은 잠시 전장에서 빠지고 인간들끼리 다시 싸움이 이어져.

초반에는 꽤 잔혹한 장면도 나와.

 

트로이 전사 아드라스토스가 메넬라오스에게 붙잡힌 뒤 살려주면 아버지가 큰 몸값을 줄 것이라며 목숨을 구걸해.

메넬라오스는 실제로 그를 살려 보내려고 하지.

 

그런데 아가멤논이 나타나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다며 반대하고 결국 아드라스토스를 죽여버려.

그런 전쟁터에서 바로 뒤이어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져.

 

디오메데스와 트로이 동맹군의 전사 글라우코스가 서로 싸우기 위해 마주 서.

디오메데스는 상대의 정체를 모르자 먼저 누구인지 물어봐.

혹시 신이라면 싸우지 않겠다고 하지.

아폴론에게 한 번 제대로 경고를 받은 뒤라 그런지 이제는 신에게 함부로 덤빌 생각이 없어.

 

그러자 글라우코스가 자신의 가문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그 첫머리에서 《일리아스》 전체에서도 아주 유명한 비유가 나와.

인간의 세대는 나뭇잎의 세대와 같다.

 

바람에 떨어지는 잎이 있는가 하면 봄이 오면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듯,

인간도 한 세대가 사라지면 또 다른 세대가 태어난다는 이야기야.

전쟁터에서 상대의 출신을 묻다가 갑자기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이런 장면 때문에 《일리아스》가 단순한 전쟁 이야기를 넘어 고전으로 남은 거고.

 

(글라우코스: 트로이를 지원하러 온 리키아군의 주요 전사. 히폴로코스의 아들이며 벨레로폰테스의 후손.)

 


벨레로폰테스

※ 잠깐, 글라우코스의 조상 벨레로폰테스

 

글라우코스가 족보를 설명하면서 꽤 유명한 신화 하나가 《일리아스》 안에 통째로 들어와.

바로 벨레로폰테스, 흔히 벨레로폰이라고도 부르는 영웅의 이야기야.

 

벨레로폰테스는 왕비 안테이아의 유혹을 거절했다가 오히려 자신이 그녀를 범하려 했다는 누명을 써.

분노한 왕 프로이토스는 직접 죽이기는 꺼림칙했는지 벨레로폰테스에게 그를 죽이라는 뜻이 담긴 표식이 적힌 서판을 들려 리키아로 보내버려.

 

그런데 벨레로폰테스는 그곳에서 죽기는커녕,

불을 뿜는 괴물 키마이라를 죽이고, 솔뤼모이족과 싸우고, 아마존족까지 물리치며 살아남아.

결국 리키아 왕도 그의 능력을 인정해 딸을 아내로 주고 나라의 일부까지 나눠줘.

 

이야기 자체가 워낙 유명해서 글라우코스의 족보 설명이라고 그냥 넘기기는 아까운 부분이야.

 


7. 둘은 갑옷을 바꿨는데 한쪽이 엄청나게 손해를 본다

 

글라우코스의 이야기를 듣던 디오메데스가 갑자기 반가워해.

알고 보니 글라우코스의 조상 벨레로폰테스와 디오메데스의 할아버지 오이네우스가 과거 서로를 환대했던 사이였던 거야.

 

고대 그리스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크세니아, 즉 손님과 주인 사이에 맺어진 환대 관계가 후손에게까지 이어진 거지.

두 사람은 바로 싸움을 멈춰.

 

전쟁터에는 서로 죽일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있으니 둘만큼은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손을 잡은 뒤 갑옷까지 교환해.

 

그런데 여기서 호메로스가 꽤 노골적인 농담을 하나 넣어.

글라우코스가 자기 황금 갑옷을 디오메데스의 청동 갑옷과 바꿔버린 거야.

가치는 무려

황소 100마리 대 황소 9마리.

거의 열 배가 넘는 손해야.

 

호메로스는 여기서 그냥 실수했다고 넘어가지 않고,

제우스가 글라우코스의 분별력을 빼앗았다고까지 말해.

 


8. 트로이 사람들은 디오메데스를 막아달라고 신에게 빈다

 

그리스군의 기세가 너무 강해지자 트로이의 예언자 헬레노스가 헥토르에게 조언해.

헥토르는 병사들을 붙잡아두고,

직접 트로이 성으로 들어가 어머니 헤카베에게 아테나 신전으로 가서 기도하게 하라는 거야.

 

헬레노스는 지금의 디오메데스를 두고 아킬레우스조차 이렇게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야.

 

헤카베는 트로이 여성들을 모아 가장 아름다운 옷을 아테나에게 바치고,

디오메데스를 쓰러뜨려준다면 아직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암소 열두 마리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해.

 

하지만 결과는 한 문장으로 끝나.

아테나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아.

지금 디오메데스를 저렇게 만들어놓은 신이 바로 아테나니까.

 

(헬레노스: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아들. 트로이의 왕자이자 뛰어난 예언자.)

(헤카베: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왕비. 헥토르와 파리스의 어머니.)

 


9. 헥토르는 파리스를 다시 전쟁터로 끌어낸다

 

신전에 보낼 부탁을 마친 헥토르는 이번에는 파리스를 찾아가.

파리스는 자신의 방에서 무기를 만지고 있고 헬레네도 곁에 있어.

 

헥토르는 사람들이 성벽 밖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이 모든 전쟁의 원인을 만든 사람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며 동생을 꾸짖어.

파리스는 이번에는 변명만 하지 않고 곧 무장을 갖춰 전장으로 나가겠다고 해.

그런데 파리스보다 더 심하게 파리스를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어.

 

헬레네야.

 

헬레네는 차라리 자신이 태어난 날 죽어버렸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책하고,

자신이 좀 더 제대로 된 남자의 아내였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파리스까지 비난해.

 

그리고 계속 싸우느라 지친 헥토르에게 잠시 쉬었다 가라고 권해.

하지만 헥토르는 거절해.

 

병사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고,

무엇보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해.

다시 살아 돌아와 그들을 볼 수 있을지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야.

 


헥토르 가족의 작별

10. 헥토르에게 안드로마케는 전쟁터로 돌아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헥토르의 아내는 안드로마케야.

헥토르가 집에 가지만 아내와 아들은 없어.

전황이 나쁘다는 소식을 들은 안드로마케가 어린 아들과 유모를 데리고 성벽으로 올라가 있었던 거야.

헥토르는 결국 스카이아이 성문 부근에서 아내를 만나.

 

안드로마케는 울면서 남편의 손을 잡아.

그리고 자신에게 이제 헥토르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

 

아버지 에에티온은 아킬레우스에게 죽었고,

일곱 명의 형제도 같은 날 모두 아킬레우스에게 죽었어.

 

어머니는 포로가 되었다가 몸값을 받고 풀려났지만 이후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죽었다고 해.

그래서 안드로마케가 헥토르에게 하는 말이 유명해.

 

헥토르는 이제 그녀에게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고, 오라비이며 남편이기도 하다는 거야.

 

국내에서도 이 대목은 《일리아스》를 대표하는 안드로마케의 말로 자주 인용돼.

안드로마케는 단순히 가지 말라고 울기만 하는 것도 아니야.

 

적군이 자주 공격하는 성벽의 약한 지점까지 짚어주면서,

전장 한가운데로 나가지 말고 그곳에서 병사들을 지휘해달라고 부탁해.

 

하지만 헥토르는 그럴 수 없다고 해.

트로이 사람들과 트로이의 여자들이 자신을 겁쟁이라고 생각하는 수치를 견딜 수 없고,

자신은 언제나 앞장서 싸우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야.

그리고 헥토르는 이미 어느 정도 자신의 미래도 알고 있어.

 

언젠가 트로이는 무너질 것이라고 말해.

 

그런데 자신에게 가장 괴로운 건 아버지 프리아모스나 어머니 헤카베, 형제들이 죽는 모습조차 아니야.

트로이가 함락된 뒤 안드로마케가 그리스군에게 끌려가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가 되는 모습을 생각하는 게 가장 괴롭다고 말해.

 

죽음이 무서워서 전쟁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죽은 뒤 남겨질 가족의 삶을 알고 있으면서도 돌아가는 거야.

 


투구를 보고 겁먹은 아들

11. 아버지의 투구를 보고 울어버린 아스티아낙스

 

그때 헥토르가 어린 아들을 안으려고 손을 뻗어.

아들의 본명은 스카만드리오스인데,

트로이 사람들은 아이를 아스티아낙스라고 불러.

헥토르가 트로이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에게 ‘도시의 지배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붙여 부른 거야.

 

그런데 아버지를 본 아스티아낙스가 갑자기 유모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울어버려.

헥토르가 무서워서가 아니야.

헥토르가 쓰고 있는 청동 투구 위에서 말총 장식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겁을 먹은 거야.

 

그 모습을 본 헥토르와 안드로마케가 함께 웃어.

조금 전까지 자기 죽음과 트로이의 멸망, 아내의 노예 생활을 이야기하던 두 사람이 잠깐 부모로 돌아오는 순간이야.

 

헥토르는 투구를 벗어 땅에 내려놓고 아들을 품에 안아.

그리고 제우스와 신들에게 기도해.

 

이 아이가 자신처럼 트로이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되고,

언젠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 사람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 말을 들은 안드로마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어.

헥토르는 아내를 위로하고 다시 투구를 써.

그리고 전쟁터로 돌아가.

 

안드로마케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 있던 여자들은 아직 살아 있는 헥토르를 두고 벌써 장례라도 치르듯 통곡해.

 

그가 다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일리아스》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끝나.

잠시 후 무장을 마친 파리스가 헥토르를 따라잡고,

두 형제가 다시 전쟁터로 향하면서 제6권도 끝나.

 

(안드로마케: 헥토르의 아내. 킬리키아의 테베를 다스리던 에에티온의 딸.)

(아스티아낙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어린 아들. 본명은 스카만드리오스.)

 


다음 이야기: 《일리아스》 제7~8권 —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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