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세돌 9단은 은퇴대국을 마지막으로 바둑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에 관해선 말이 많지만, 최근 그가 종종 방송에 모습을 보이며 그가 왜 은퇴했는 지 해소되고 있다. 많은 기사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그만두는 경우는 많지만, 그 상대가 기계인 알파고였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크게 와닿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바둑을 잘 알지는 못해도 많이 들어본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조훈현, 이창훈, 이세돌은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바둑의 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도 알고 아마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이세돌때문에 바둑의 승단방식을 고쳐야만 했던 일화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바둑이라면 분명 보수적인 집단일텐데, 어떻게 해서 이세돌은 룰을 바꿔놨을까?
의외로 정답은 간단하다. 이세돌은 본인의 실력과 고집만으로 룰을 바꾸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게 끔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2002년 승단대회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승리하면 90점, 패배 30점, 무승부는 60점을 얻었다. 초단의 경우는 10국 평점 75점이었고, 24국 평균 67.5점이면 2단이 되었다. 마지막 단수인 8단에서 9단이 되려면 25국 평균 75점을 넘어야 했다. 이것이 그냥 전체경기 평균을 낸 것이라면 편했겠지만, 승단을 하려면 승단대회에 나가야 했고, 일반 대회와 달리 '치수제'가 시행되었다. 치수제는 쉽게 얘기하면 단이 높을수록 핸디캡을 주어 진행되는 방식이다. 때문에 고단자일수록 승리하는 게 어려웠고, 1년에 몇 단계를 뛰어넘는 고속 승단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국 또한 많이 두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과 체력적인 소모가 큰 대회였다.
이세돌은 2002년 당시 3단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당시 메이저 국제 대회인 '후지쯔배' 대회를 우승한 상태였다. 한국기원의 입장에서는 3단이 9단들을 모조리 잡아내고 있으니, 승단대회를 해줬으면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세돌은 "승단대회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해버렸다. 각종 세계 대회를 쓸어가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승단 시험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여론은 이세돌의 편이 되었다. 단수를 꼭 승단대회로만 올려야 하느냐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미 중국도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거두면 자동으로 승단시켜주는 시스템을 갖춘 상태였다.
그 와중에 이세돌은 32연승을 기록하며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승단시스템을 고치지 않는 기원도 기원이지만, 다른 기사들도 슬슬 불만이 생겼을 것이다. 3단이 9단을 마구 잡아대며 생태계를 헤집어놓고 있는데, 기원의 입장에서도 가만히 볼 수는 없게 생겼다.
결국 기원은 항복을 하고 만다.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우승할 시 3단, 준 우승시 1단을 올려주기로 한 것이다. 국내 대회에서도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들은 우승 시 2단, 준 우승시 1단이 올라가게 되었다. 이렇게 제도가 바뀌고 나니 9단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승단 제도가 바뀐 뒤 5개월 만에 이세돌은 9단이 되었다. 이세돌 덕분에 국내 바둑계의 고단자들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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