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퍼스트', 주로 남성이 여성을 배려할 때 사용하는 말이죠. 요즘에는 시대가 많이 변했고, 잘 사용하는 말은 아니지만 여전히 쓰이곤 합니다.
'젠틀맨'이라는 신사를 뜻하는 단어가 영국에서 나왔고, 주로 신사의 나라라 불리는 영국에서 이 말이 나왔을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이 그 당시에는 여성을 우대하는 것이 아닌, 여성을 무시하는 단어였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국인들이 '레이디 퍼스트'를 사용했다고 알려지는 이야기는 다양합니다.
첫째로, 영국은 비가 많이 내리고 습한 지역입니다. 당시에 신사들은 마차를 타고 다녔는데, 마차에 내릴 때가 되면 땅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죠. 만약 생각없이 그냥 내리게 된다면 구두는 물론 양복까지 흙탕물이 튀기게 되겠죠. 신사로서 그런 일을 겪을 순 없었습니다. 신사라는 뜻은 요즘엔 예의 바른 남자 정도로 해석되지만, 당시에는 신분과 외모, 매너 등 다 갖춘 남자를 의미했죠. 때문에 신사들은 마차에 내리기 전 말하게 됩니다. "레이디 퍼스트." 먼저 땅 상태를 확인해 보라 이거죠.
둘째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당시 영국을 비롯해 유럽 지역에서는 귀족들의 재산을 노려 독살하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적대적 세력을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도 독살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슬슬 예상이 가시죠? 때문에 신사들은 식사 시간이 되면 음식에 혹시 독이 들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밥을 먹기 전에 이렇게 말하죠. "레이디 퍼스트." 먼저 먹고 죽는 지 아닌 지 확인해달라 이거죠. 그래서 주로 원치 않는 식사 초대를 받게 되면 부인을 동행하는 경우가 많거나, 아예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셋째는 조금 파격적인데요.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적군을 죽이기 위해 땅에 살상용 지뢰를 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쟁 시에는 대부분 남자들이 총을 들었고, 여자들은 전쟁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죠. 그래서 전쟁 시에 지역을 이동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레이디 퍼스트." 여자들이 먼저 가서 총알받이가 되건 지뢰받이가 되건 먼저 가보라는 것이죠. 끔직하지 않나요?
하지만 사실 셋째의 경우는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합니다. 유독 한국에서만 이 말을 믿는 경우가 많아 '지뢰이디 퍼스트'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이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전쟁 중에 여성을 전선에 세우는 것 자체가 당시 상황에선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이 되네요. 지뢰밭이 있다면 굳이 뚫고 갈 이유도 없고, 다른 루트로 침투하는 것이 더 좋은 전술이기 때문이죠.
앞의 이야기들은 사실 그리 신빙성이 있는 말들은 아닙니다. '레이디 퍼스트'의 어원으로 가장 설들력 있는 설은 중세시대로 거슬러 가는데요. 다들 '기사도'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당시 전쟁이 나서 패한 경우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은 겁탈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교회가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 하면서 부터 기사 계급을 교회에 봉사시키는 쪽으로 이끌어 가는데요. 이 때 등장하게 되는 것이 '기사도'입니다. 기사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는 충성, 신앙, 용맹 등과 더불어 약자와 부녀자의 보호라는 조항이 들어 있었죠. 역사에 기반해서 이 조항을 근거로 들 때, '레이디 퍼스트'는 여기서 나온 말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여기서의 레이디는 단순히 여성이 아니라 그 당시의 귀족 여성을 의미했죠. 지금은 모든 여자들을 뜻하지만, 당시에는 귀족 여성만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인 셈이죠.
위에서 말한 첫째와 둘째는 여기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만 해도 '옥동자'라는 말이 잘생기고 듬직한 옥처럼 귀한 아들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개콘에서 개그맨 정종철의 '옥동자' 캐릭터가 나온 이후로 안 좋은 의미로 변질되었죠. 아마 시대의 흐름에 따라 '레이디 퍼스트'도 그 의미를 잃어버린 채 안 좋은 방향으로 갔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는 어원의 경우, 읽고 나서 본인이 믿고 싶은 쪽으로 의미를 두게 됩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여러분은 어떤 어원이 더 맞다고 생각되시는지요? 저는 '기사도'에서 파생되어 그 후에 역사를 거쳐 의미에 변질이 있던 적이 있었다 정도로 해석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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