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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학

코로나로 인한 명예죽음, 개그콘서트의 사실상 폐지 (1)

by 계단창고 2020.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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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회 '개그콘서트' 마지막 방송

 

1999년 방송된 개그콘서트가 21년만에 휴식기에 들어갔다. 말은 휴식기라고 하지만 사실상 폐지나 다름없다.

 

작년에 1000회를 기점으로 잠시 주목을 받아 변화를 예고했던 기세와 달리, 개그콘서트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했다. 그래도 시청률이 5~6%는 나왔던 21년이나 된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안나와 폐지를 한다는 건 기존에 있던 팬들조차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시청률은 2.5%였다. 

 

사실 나도 이 글을 쓰기 전에 개그콘서트가 끝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매번 억지로 챙겨보긴 했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1046회와 1045회를 챙겨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폐지는 잘한 선택이다. 과거의 명예가 아니었다면 이미 작년에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개그콘서트와 코미디 빅리그를 챙겨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관객의 호응이 중요한 공개 코미디에서 관객없이 개그를 한다는 건 엄청난 위기나 다름없다.

 

그에 대한 해법으로 코빅은 개그맨들을 관객석에 앉혀 놓고 그대로 공연했고, 개그콘서트는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대화를 나누는 스튜디오 촬영을 택했다.

 

결과론적으로 코빅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어도 코빅은 옳았고, 개콘은 틀렸다. 나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언제 써야하는 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개콘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개콘 폐지기념으로 당분간 코빅과 개콘에 관한 글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나는 이야기를 압축시키는 능력이 별로 없다. 도대체 이 부분에서 얼마나 지우고 반복했는 지 모르겠다. 생각을 정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코너를 하나하나 나열하며 말해보겠다.

 

 

개그콘서트 '불금-쑈'

 

개그콘서트의 시작은 '불금-쑈'라는 코너로 시작한다. 왜 불금쇼지?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개그콘서트는 일요일이 아니라 금요일 밤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어쨌든 코로나 이후, 관객들을 부를 수 없게 되자 개그맨들은 따로 촬영을 했고, 그걸 스튜디오에 모여 함께 지켜보는 형식이다.

 

오프닝은 예전에 인기있던 슈퍼스타 K를 따라한 <슈퍼스타 KBS>, 쇼미더머니를 따라한 <힙합의 신>을 차용하여, 쑈라는 형태로 분위기를 띄운다. 아니 띄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가. 관객들도 아니고 개그맨들을 세워놓고 저 정도의 개그를 한다면 억지로 웃는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

 

내가 코빅을 좋아하고 개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프로그램이 코로나를 대처하는 방식이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코빅은 관객석에 앉혀놓은 개그맨들을 웃기기 위해 노력하지만, 개콘은 마치 약장수의 바람잡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개그는 재밌는거라며 관객들을 설득하려 한다. 정작 본인들은 그렇게 재밌지도 않으면서, 재밌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들은 영상을 보는 내내 쉴새없이 집중하지 못하게 떠들어댄다. PD들이 집어넣은 웃음소리와 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영상을 보며 떠드는 소리 등이 합쳐져 계속해서 제발 웃어달라고 애쓰고 있다. 패널들은 영상에 보탬이 되기 위해 계속 말을 하며 웃음을 유도하는데, 영상 자체의 퀄이 너무 낮아 짠한 웃음 유도로만 남는다.

 

개콘을 보는 내내 솔직히 힘들었다. 이미 내 마음이 문이 닫힌 상태인건지, 평소에 잘만 웃는 내가 도대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포인트를 잡아내기 힘들었다.

 

 

개그콘서트 '개그맨 플렉스'

 

그렇게 오프닝이 끝나고 첫 개그는 <개그맨 플렉스>라는 코너다. 개그맨 김원호와 조신세가 나와서 일반인과는 다른 플렉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코너다. '플렉스'는 보통 잘난척 한다거나, 자랑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된다. 

 

여기서 나오는 김원호는 예전에 나름 인기를 끌었던 <오목 고시원> 코너에서 가져온 캐릭터다. 그 코너 안에서도 고시원생들 답지 않는 모습으로 웃음을 만들어 냈는데, PD는 이 캐릭터를 그냥 버리기가 아까운 모양이다. 세계관을 확장시켜 고시원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의 플렉스로 재미를 준다.

 

개그 내용 자체로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렇게 웃기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마음의 문을 닫은 탓인지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개그의 방식은 웃음 포인트가 명확하다.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다, 이 부분에서 웃어라! 하며 음악과 함께 웃음을 유발한다. 개그 용어를 잘 모르지만, 니쥬를 깔고 오도시를 살린다고 볼 수 있다. 니쥬는 웃기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 보면되고, 오도시는 그 기반을 통해서 웃기는 행동이나 역할로 이해하면 된다.

 

아쉬운 부분은 이 오도시 장면에서 장면 자체만으로 충분히 웃음이 나오는 부분들도 많았는데, 개그 포인트가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자막이나 패널들이 설명충처럼 '이래서 웃긴거다' 식의 멘트를 날린다. 패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출연료값을 해야하기 때문에, 멘트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코너들도 전부 다 이런 식이다. 영상이 부족하면 설명하고, 자기끼리만 웃고.

 

사실 이런 콩트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요즘 상황과 대치해서 생각해보면 유튜브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개그맨 김원호는 실제로 동료인 조진세와 함께 '우낌표'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썩 잘 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 유튜브를 하는 개그맨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좋게 평가해서 코너의 한 자리를 줬다고 본다. 물론 이들보다 유명한 개그맨 유튜버들이 있지만, 관객석쪽에 보이지 않는걸로 봐서는 이미 유튜브쪽으로 돌아서지 않았나 싶다.

 

난 이 부분을 꼭 지적하고 싶은데, 제발 웃기려고 유튜브를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튜브의 강점은 방송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개그 소재에 수위조절이나 민감한 부분이 있어 방송국은 제약이 많으니 자극적이고 신선한 유튜브 영상들이 인기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개콘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생각한 것인지, 그러한 유튜브 영상들을 토대로 자극적인 수위들은 모두 다 빼버리고, 단지 개인 방송의 형태만을 갖춘 영양가없는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니 그나마 있던 시청자들조차 모두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개콘에서 유튜브 영상같은 걸 볼 거 였으면 애초에 자극적이고 재밌는 유튜브를 봤을 것이다.

 

 

개그콘서트 '미친 랭킹쇼'

 

다음으로 이어지는 <미친 랭킹쇼>는 풍자 개그다. "회사에서 해야하는 미친 랭킹"이라는 주제였다. 

 

개그의 포인트는 간단하다. 꼰대같은 부장을 대하는 메뉴얼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답답한 윗사람이 나오고 부하직원들이 참교육 한다는 내용. 내용만 들어보면 통쾌할 것 같지만, 실상은 크게 와닿지도 않는다. 수박 겉 핥기같은 얄팍하고 어설픈 풍자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 개연성이다. 앞에 내용이 좀 그럴듯해야 뒷 내용에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박영진 부장은 별로 잘못한 점이 없다. 일 못하는 부하에게 몇 마디 했다고 따귀 맞고, 괴롭힘 당해야하는 것인가. 부장님의 쓴소리를 들은 다음 장면에서는 통쾌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찝찝한 기분만 감돈다. 군대 시절 고문관같은 후임이 떠오를 뿐이다.

 

그나마 마지막 여자 직원에게 "서른 넘은 여자를 누가 만날려고 해?" 라는 부분은 이해가 갔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설정이다. 말하기도 싫다.

 

개그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라고. 그러나 실패한 개그는 상황을 진지하게 만든다. 우리가 몇년 전 신동엽의 섹드립에 열광했던 이유는 유머와 성희롱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지 않고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주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어설픈 섹드립은 자칫 성희롱으로 경찰서에 끌려가며, 마찬가지로 이러한 실패한 풍자 개그는 보는 이를 끝도없이 진지충으로 만들어버린다.

 

결론을 내자면, 이 코너는 웃겨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으니 의미부여라도 하자는 개그다.

 

 

개그콘서트 '절대장가감 유민상'

 

<절대 장가감 유민상>. 2014년 쯤 방송된 <유민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느낌의 코너다. 원래는 <절대감 유민상> 이라는 코너였는데, 코로나 이후 약간 변형시킨 것이다. 원래 코너안에서도 유민상은 김하영에게만 한없이 약해지고 애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케미의 반응이 꽤나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이제는 완전히 둘의 사랑이야기로 코너를 만들었다. 

 

이 코너는 다른 코너에 비해 길이가 굉장히 길었다. 정확히 재보니 10분 50초 정도. 둘의 달달한 케미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영상의 길이로 볼 때, 꽤 밀어주는 걸로 보인다.

 

또 안 좋은 이야기를 하라면 계속할 수야 있겠지만, 점점 지쳐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 시트콤처럼 그려지는 이 영상에서 구닥다리 같은 스토리적인 부분을 지적해야 할지, 몰입 안되는 이 러브라인의 설정 자체를 지적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과거 엑스맨의 김종국과 윤은혜, 런닝맨의 송지효와 개리, 그리고 우결에 출연한 많은 배우와 가수들. 그런 연예인들이 예능에서 보여주는 러브라인이 달달했던 건 정말 실제로 만나지 않을까하는 부분에서의 긴장과 설렘이라고 본다.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 공연에서 보여줬던 유민상과 김하영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게 꽤나 달달한 모습을 잘 연출했다. 보는 입장에서 나름의 재미도, 설렘도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연기 형식으로 바뀌어버린 이 코너에선 그런 설렘이 전해지지 않는다. 이 둘의 달달함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닌 단순히 개그성으로 밑어붙이겠다는 의도라면 나는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겠지만, 달달함을 극대화하려고 이러한 극을 짰다면 완전히 계산 착오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둘의 달달함을 원한 것이지, 달달한 연기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다. 공연도 당연히 연기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연기하는 그들의 모습을 공연장에서 지켜보는 것과 녹화 영상으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예능을 보는 이유가 현실감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차라리 PD가 둘을 연결시켜, 데이트 한 장면을 편집한 것이 오히려 보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연기적으로 어색해하는 유민상이 아닌, 실제로 당황하며 놀라는 유민상의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고 웃길테니 말이다. 관찰 예능이 요즘 엄청 많아졌다는 것은 식상할수도 있지만, 그만큼 소비가 있다는 것이다. 개콘이 그렇게 울부짖던 것이 변화였다면, 차라리 그런 쪽으로의 변화는 어땠을까 싶다.

 

 

개그콘서트 '이별 물건 전담처리반'

 

관찰 예능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코너가 바로 다음에 나왔다.

 

<이별 물건 전담처리반>

 

개그맨들 답게 평범한 물건이 아닌, 아직 잊지 못한 옛 연인의 물건을 처리하는 내용이다. 내용만 놓고본다면 사실 가장 웃음을 유발할 요소들이 많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름의 좋은 소재를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같은 연출을 펼친다.

 

내 주변 친구들이 모여서 친구가 아직도 옛 여자친구를 못 잊고 버리지 못한 물건을 발견한다면, 친구들은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어떻게든 물고 뜯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헤어지고 술먹고 난리친 이야기, 밤 늦게 전화한 찌질한 이야기, 아직도 못 잊었냐며 구박하는 이야기 등등 놀릴 요소도 충분하고 에피소드 또한 풍성할 것이다. 말하는 게 직업인 개그맨들이 모이면 얼마나 더 웃길 것인가.

 

하지만, 정작 이들은 모여서 집 구경 한 번 시켜주고 이별 물건을 한 번 보여주고는 바로 경매에 들어간다. 영상은 3분인데 2분은 집 구경 시켜주고, 1분 정도만 짧게 이별 얘기를 하고 끝나버린다. 대화의 내용도 그냥 소소하고 아무 영양가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럴 거 였으면 차라리 유명한 연예인을 찾아가서 물건을 받아왔어야 한다.

 

관찰 예능은 나영석 PD의 '삼시세끼' 필두로, 지금은 대부분의 예능이 이러한 모습을 띄고 있다. 관찰 예능은 재밌으면서도 내가 싫어하는 예능에 속한다. 그 이유는 연출이 싫다거나, PD가 싫다거나, 출연자가 싫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개그맨들의 설자리가 점점 없어지지는 않을까하는 우려에서 였다.

 

우리가 누군가의 사생활이 궁금하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인기가 있어야 하고 유명해야 한다. 일반인이 브이로그랍시고, 본인의 일상을 올린다한들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적어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나오는 출연자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정도는 갖추어야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다 무너져가는 개콘 개그맨들의 일상을 누가 관심있게 보겠는가. 심지어 재미도 없게 다큐 형식으로 찍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나영석이 멋진 배우들과 가수는 그저 관찰만 하고, 강호동을 데리고는 신서유기를 통해 고생시키는 이유를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싶다.

 

 

 

하나하나 코너를 짚으면서 글을 쓰려하니 생각보다 길어졌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 번에 쓰도록 하겠다.

 

 

 

코로나로 인한 명예죽음, 개그콘서트의 사실상 폐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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