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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학

개그콘서트는 어떻게 추락했는가

by 계단창고 2020.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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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개그콘서트가 재미없어진 진짜 이유라는 식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거기에서는 개그맨들의 개그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이번에는 개그 프로그램의 시스템적인 부분을 말해보려고 한다. 한 때는 평균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개콘이 어떻게 2%까지 가게 되었는가. 우선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황금기 시절의 개콘이나 웃찾사 등을 볼 때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저들은 어떻게 관객들의 개그코드를 잘 파악해서 큰 웃음을 줄 수 있었을까. 천재들인 것일까. 단순히 아이디어를 짜고 노력하면 되는 것일까. 그걸 보고 PD가 선구안으로 무대에 세우는 걸까. 물론 PD에게 검사를 맞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개그맨들과 PD들조차 관객들 앞에서 무대를 하기 전까지 이것이 웃긴 것인지 어떤지는 확신할 수 없다. 때문에 그들은 검증 과정을 거친다.

 

그들은 우선 소극장에서의 반응을 살핀다. 당시 방송의 벽은 높았고, 수많은 개그맨들이 코너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실험적으로 아무거나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시간 방송에서 코너는 많아봐야 10개 남짓. 수십 개의 아이디어들이 이 소극장에서의 검증을 통해 큰 웃음을 주고 통과한 것들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당시 개콘의 인기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게 검증을 거친 코너 중에서도 모두가 사랑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개콘의 황금기는 달랐다. 가장 재미없다고 평가받던 코너들도 지금 보면 이게 왜 재미가 없었을까 싶을 정도로 개콘은 대단했다. 그렇게 무대에 오른 개그맨들은 큰 인기를 누린다. 인기를 가진 개그맨들은 그 자체만으로 파워가 생긴다. 당연히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그들을 주목할 것이고, 시청자들도 그것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예능에서 볼 수 없었고, 개콘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왜 다른 방송에 나가지 못했을까.

 

 

 

<미스터 트롯>을 떠올려 보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거나, 우승은 못해도 인기가 생기면 수많은 예능에서 러브콜을 받는다. <라디오 스타>, <아는 형님>, <미우새> 등 지금 잘나가는 프로그램에서도 그들을 출연시키고 싶어서 난리다. 꼭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대중들이 원하면 그들은 언제든 출연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TV에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최근에 갑자기 인기가 생겼던 타짜 '곽철용'을 연기한 김응수, '깡'으로 주목받는 비 등 대중들에게 관심이 생기면 방송 관계자들은 그들을 섭외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개콘 황금기 시절, 그들은 그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개그맨들을 다른 예능에서 보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개콘에만 전념하기 위해 모두 고사했던 것일까. 아니면 아이디어 회의 때문에 너무 바빠서 못 나온 것일까. 개콘에 나오는 목적이 후에 유재석, 강호동의 뒤를 이어가는 것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개콘을 통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어 예능에 출연하는 것이 목적일 테니까.

 

그럼 대체 뭐가 문제라서 나가지 못한걸까. 물론 무조건 못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개그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PD들의 허락없이 나가지 못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또한, 아이디어 회의라는 명목으로 거의 5일간을 붙잡아 두었다고 한다. PD들 입장에서는 귀한 인재를 빼앗길 수 없으니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계약한 것도 아닌데 PD들은 어떻게 이런 권력을 손에 넣었을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개그맨들을 어떻게 쥐락펴락 할 수 있는가.

 

 

 

 

당시의 개콘은 이렇다 할 경쟁 상대가 없는 무적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3년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이 SBS에서 시작되면서 개콘에 반기를 든 개그맨들이 많이 옮기게 되었다. 심현섭, 강성범,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등 많은 인기를 누린 개그맨들이었지만, 신흥 세력인 박준형의 '갈갈이 패밀리'의 탄생으로 약간 밀려난 개그맨들이 옮겨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갈갈이 패밀리에 조금 밀렸다고 해도 개콘의 입장에서 큰 전력 손실임은 틀림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나. 웃찾사의 초창기는 실패했고, 개콘은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위상을 되찾았다. 2003년 KBS 연예대상이 '박준형' 인 것을 떠올리면, 얼마나 대단했는 지 알 수 있다. 아직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아니고, 개그 코너의 인기로만 대상을 받는 케이스는 아직도 유일하다.

 

여기서부터 개콘의 권력은 한층 더 막강해진다. 개콘으로 인해 큰 인기를 얻은 개그맨들이 없어져도, 개콘의 시스템 자체로 위기를 대처했기 때문에 더 이상 개그맨들과의 동등한 관계가 유지되기 힘들어진다. 아무리 인기를 얻어도 개콘에 반기를 든다면, 그냥 내보내고 신인 개그맨을 받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 전에는 PD들과 함께 아이디어 회의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면, 검사를 받는다는 표현이 생긴 건 이때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건 이후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등은 다시 개콘으로 복귀하고 PD들은 더 큰 위용을 뽐냈다. 불만이 있어도 큰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제 예능에 본격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개콘을 그만둬야만 했고, 이러한 악순환이 결국엔 그들의 발목을 잡고 만다.

 

 

 

 

개그콘서트는 일종의 등용문이 되었어야 한다. 예능에서 활약할 만한 인재들을 뽑는 프로그램. 물론 박준형처럼 개그 자체만으로 대상을 받고 활약하면 좋겠지만, 끼 많은 개그맨들이 언제까지고 개콘안에 갇혀 지낼 수는 없는 노릇. 그들은 개그를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다. 새로운 후배들이 들어오면 밀리기도 하고, 자리를 내어주기도 해야 한다. 때문에 오히려 개콘에서 오랜 활약을 한 개그맨들을 더 독려해서 예능으로 보내주고 밀어줬어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개그맨들이 나오지 않으면 대체 개그맨들은 어디서 활약을 해야한다는 말인가.

 

유세윤을 예로 들어보자. 다들 알다시피 그는 '봉숭아학당'의 복학생, 강유미와 함께한 '사랑의 카운슬러' 등 많은 코너들을 통해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예능으로 진출을 하게 되었고, 그의 인생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릎팍 도사'를 만나게 된다. 그러다 그는 '엄홍길'편을 촬영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개콘 연습을 하루 못하게 되었고, 당일 녹화가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개콘의 대응은 분노였다. 

 

당시의 기사를 읽어보면, 이 건으로 인해 유세윤은 물론 그의 관계자까지 방송국의 출입 제재를 받을 정도였고, 유세윤이 진행하던 코너 2개가 날아가게 된다. 물론 둘의 대한 입장 차이는 분명하게 있다. 하지만 몇 년동안이나 같이 지내던 동료를 하루의 연락두절로 쳐낼만큼 당시의 개콘은 하늘 높은 줄 몰랐고, 결국 유세윤은 개콘을 떠나게 된다. 재밌는 건 이러한 제재를 가해놓고도 유세윤이 떠날 지 몰랐는 지, 떠날 당시에 원색적인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다.

 

개콘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은 1시간짜리 프로그램의 5분가량 출연하기 위해서 아이디어 회의, 연습, 리허설, 녹화 등으로 거의 주 5일을 뺏기게 된다. 덕분에 시청자인 우리들은 재밌게 볼 수 있었지만, 정작 개그맨들은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이렇듯 개콘의 출연자들은 타 프로그램에 나갈 수는 있었지만, 밀어주기는 커녕 굉장히 제재가 심했고 시간 또한 넉넉하지 못했다.

 

가수는 새 앨범이 나올 때, 배우들은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가 나올 때, 개그맨들은 새로운 유행어나 히트한 코너가 있을 경우 예능을 나간다. 가수들이나 배우들은 잠깐 얼굴을 비추고 돌아가지만, 개그맨들은 본인의 활동영역인 점을 고려하면 개콘에 출연하느냐 아니느냐는 생업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타 프로그램에 본격적으로 나가려면 개콘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개그맨들은 그들의 활동에 대한 지지 기반을 잃은 상태로 예능에 뛰어들 게 된다.

 

아직도 큰 인기를 얻고있는 '정글의 법칙'이 김병만이 진행하던 개콘의 최장수 코너 '달인'임을 떠올려본다면, 그들을 지탱해줄 수 있는 지지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다행히 유세윤은 강호동을 만났고, 정형돈은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을 만나 재미없는 개그맨이란 별명을 참고 견디며 빛을 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개그맨들은 누구하나 끌어주는 이 없이 서서히 기억속으로 사라져갔다.

 

 

 

 

이에 반대되는 것이 '코미디빅리그'라 할 수 있다. 다음 번에는 코미디빅리그와 비교하여 코미디빅리그는 어떻게 살아남았는 지 알아보도록 하자.

 

 

 

 

 

 

 

 

개그콘서트가 재미없어진 진짜 이유

 

코로나로 인한 명예죽음, 개그콘서트의 사실상 폐지 (1)

 

코로나로 인한 명예죽음, 개그콘서트의 사실상 폐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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